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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동성애와 아버지와 닮은 직장 상사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35세의 Q씨

증세: 동성애를 가진 것을 알 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남성들과 동성애 관계를 해 본 적이 없음, 아버지와 유사한 직장 상사들과 갈등 때문에 지금까지 직장을 여러번 옮겨다님

진단: 대인공포증,  동성애, 보드라인 자아 장애,

연결: 치료자의 인터넷 블로그를 본 Q씨가 자신의 동성애 문제를 치료를 받고 그리고 직장 상사와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고 치료자에게 e-메일로 연락을 했음

치료 기간: 처음에 컨설팅으로 2시간을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결정 하기로 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회기는 2020, 9, 9: 오후 8: 00- 10:00 에 2시간 동안의 Q씨의 증세의 시작과 그의 삶의 환경을 요약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e-메일로 동성애 치료를 문의하는 메일을 받았다. 전화 번호를 남겼더니 Q씨가 전화로써 동성애 문제와자신의 상사와 갈등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싶다고 해서 컨설팅을 수요일 저녁 8시-10시까지 예약을 했다. 그는 수요일 저녁 8시에 도착을 했다.

 Q씨의 삶의 역사: Q씨는 현재 35세로 아직도 남성들과 동성애를 가진 경험은 없는 사람으로 2명의 누나들(3살과 1살 위의 누나들은 결혼으로 분가)과 어머니(10년에 아버지의 작고)가 재혼으로 살고 있고 그리고 어머니와는 20세 이후에 집을 나와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누나와 어머니에게 동성애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로 아무도 Q씨가 동성애라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Q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어린시절에 3자매의막내로 성장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남자답지 못하다 그리고 큰 누나가 아버지를 닮아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큰 누나가 어린시절에 Q씨에게 너는 남자다움이 없다, 남자로써 배포와 꽝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3학년 시점에서 일본 만화의 에로틱한 부분들 즉 여성의 음부와 음모가 그려진 만화를 보고 흥분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발기가 된 것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전자 오락에서 에로틱한 이성에 대한 몸매에 흥미를 보이고 에로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중학교 1학년 시점에서 동성애 대한 근육질의 남자, 운동을 많이한 남자들에게 섹스 욕구를 느끼기 시작해서 동성애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Q씨는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시점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놀았다고 했다. 그 때 그림을 주로 태권보이와 같은 근육실, 알통 몸뚱이 등의 그림을 자주그렸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의 그림을 모아서 Q씨에게 의논하지 않고 학교 선생님에게 가지고 가서 아들의 심리가 어떤 것인가?를 문의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Q씨는 5년 전에 30세 때 자신의 동성애를 치료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요양병원의 60대 혹은  70대의 나이의 원장님이 동성애를 치료 한다면 말을 듣고 그 의사를 찾아가서 약2시간 동안 무료로 동성애 상담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 때 그 원장 선생님이 누나들과 관계 그리고 어머니 관계를 물어 보았는데 Q씨가 느낀 것은 근친상간의 상처가 있는가? 라는 것을 탐색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원장의 소개로 30대 중반의 한 여자 선생님과 50분으로 동성애 상담을 했으나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기독교 인터넷에서 소개한 동성애자 치료를 한다고 하는 한 70대의 남자 심리상담가를 찾아가서 6개월 동안 1주일에 1회로 50분씨 약 8만원에서 12만원 정도(지금가지 4회에 걸쳐처 심리치료를 받은 비용의 범위)의 사이에서 비용으로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그 치료사들은 동성애를 직접 치료한 것이 아니고 신경증의 일부로써 동성애가 파생된 것으로 신경증 치료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불만족했다고 털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6개월 보다 1달 더 치료를 받았던 치료사가 70대 후반 남자 치료사에게 가장 많이 치료를 받았는데 그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초반기에는 치료가 마음에 들었는데 후반기에는 겉도는 기분이 들어서 결국은 하차를 했다고 했다.

지금 현재의 상황: Q씨는 동성애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에 권위적인, 지시, 명령적인 아버지로부터 비난, 비판을 그리고 큰 누나로부터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괴롭힌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별히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 품에서 잠을 자면서 어머니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어머니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라고 불안, 초조했던 기억을 이여기를 했다.

 어머니는 Q씨가 어린시절부터 아버지한데서 받은 스트레스를 Q씨 한데 털어 놓으면서 Q씨가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흡수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Q씨가 15세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그리고 누나들이 결혼으로 집을 떠나면서 Q씨는 20세 때 집에서 나와서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30대로 들어가면서 동성애를 치료해야 하게다는 생각이 들어서 5년 전에 요양병원 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의추천으로 젊은 여자 심리치료사를 만나서 1회 치료회기를 가졌다. 그 이후에 약 1년 동안 두명의 치료사로부터 6개월 혹은 7개월의치료를 받다가 그만 두게 되었다고 했다.

 Q씨는 아버지와 닮은 권위적이고, 비판적이고 그리고 비난적인 상사를 만나면 관계가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그를 피해서 직장을 옮겨다는 경험이 여러번 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올려놓은 동성애 치료 사례를 보고 거짓으로 꾸면서 한 것이 아니고 진실된 치료 경험을 이야기를 한 것으로 신뢰가 가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Q씨는 컨설팅의 끝날 무렵게 치료자에게 화요일 저녁 혹은 목요일 저녁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승용차로 이곳에 오는데 약 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치료자의 은행계좌 번호를 가지고 가서 6개월 치료 계약으로 입금을 하고 다음 주일부터 치료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컨설팅을 끝낼 수 있었다.

 다음의 홈페이지에서는 Q씨는 고 3학년 때 일본의 문화원에서 1년에 10명씩 선발해서 3년 동안 장학금으로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대학 2학년을 일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장애인으로 어린시절에 다리의 골수염이 수술이늦어서 평생동안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으로 살았기 때문제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평생을 무능한 경제인으로 살면서 성격이 부정적이어서 Q씨가 어린시절에 아버지의 비판과 비난 속에서 처벌적으로 성장했고 말을 잘 하지 않고 애 늙은이로 조숙하게 착한 소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