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동성애로 고민하는 30대의 남자 S군

증세: 심한 동성애로 지금까지 살아 오다가 모태 신앙인 기독교 신자로써 믿음과 충돌, 갈등으로 고민에 빠지면서 치료를 호소함

진단: 진성 동성애, 가벼운 불안증, 가벼운 우울증

연결: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동성애 치료 사례의 과정을 지켜 보다가 동성애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로써 치료 되어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처음에 컨설팅으로 2시간을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회기는 2시간 동안의 S군의 동성애의 시작과 역사를 요약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S군은  치료자에게 동성애 치료를 받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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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 치료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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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주소 펼치기
보낸사람
xxx <xxxxx@naver.com> 보낸날짜 : 17.11.01 00:42
받는사람
<jongmankim@hanmail.net> 주소추가
안녕하세요-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30살 남성입니다.
블로그에 나와있는 동성애치료자들의 내담내용이
매우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치료를 위해 내원해야하는 장소와
계약기간별 비용을 알고 싶습니다.

빠른시일내에 찾아뵙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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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자는 S군에게 치료자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과 6개월 계약으로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과 그 이전에 컨설팅을 2시간 받아보고 나서(치료자는 반드시 2시간을 상담) 결정을 해도 된다는 것을 설명을 하면서 컨설팅 비용은 1시간당 xxx 원으로 2시간 xxx 원을 지불한다는 것과 미리 시간 예약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수칙을 e-메일로 전달하고 나서 xx요일 저녁 8시-10까지 시간 예약을 했다. 그는 컨설팅 시작 직전에 폰 뱅킹으로 2시간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저녁 8시 정각에 치료실에 도착을 했다.

 S군은 키가 크고 홀쭉이로 미모의 매력 있는 남자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말을 말하는 달변가의 스타일로 그가 휴대폰에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적어 저장해 와서 틈틈이 그 휴대폰을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 해 나갔다.

 S군의 삶의 역사: S군은 시골에서 성장을 했고 중, 고등학교는 대도시에서 통근으로 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서울로 올라와서 누나와 같이 생활을 했다. 61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3명의 누나들이 있고 큰 누나는 36세로 미혼으로 2살 터울로 셋째 누나가 먼저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두명이 있고 그 다음에 둘 째 누나가 결혼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방의 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최근에 정년 퇴직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S군이 막내로 출생 전부터 티격태격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늘 어머니는 아버지를 평가절하고 이혼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누나가 지방의 대 도시에서 외고에 합격하면서 시골에서 가족이 대 도시로 이사를 와서 2년 동안 살 게 되었고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는데 이후에 어머니의 아버지 평가절하가 더욱 더 심해졌다고 했다. 2년 후에 다시 시골로 내려가서 부모님은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S군이 대학 1학년을 끝내고 군대에 입대를 해서 2년 군복무를 하고 전역해서 복학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약 4년 동안은 동성애를 일체 가지지 않았고 독실한 기독교 모태 신앙 속에서 자란 S군이 기독교의 믿음과 동성애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다가 대학 4학년 때 불안과 우울함으로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6개월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동성애라는 말을 부모님과 누나들고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S군은 이미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많이하게 되었고 서점에서 정신과 서적들을 20여권 사서 자신의 동성애가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원만하지 못한 갈등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병든 가족임을 깨닫게 되면서 6개월 휴학하고 고향에서 지내면서 하루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억눌린 고민을 털어 놓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자신이 고통속에 살아왔고 그리고 특별히 아버지가 S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분노가 심하다는 것을 호소연을 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S군의 호소를 수용하고 사과를 했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아버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 왔는데 사실은 S군은 아버지기 이미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자주 정신과에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증세와 병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데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자신이 어린 시절의 심리적 상처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 것에 깜짝 놀랬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부터 마대(밀가루 등을 담는 큰 자루) 속에 집어 넣고 두들겨 패서 정신을 잃은 적이 있고 그리고 ㅏ아버지가 16살-17살 경에 아버지가 따르고 좋아했던 모범생 형님이 인근의 기차 길에서 기차에 치여서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 상처 경험을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심리적 상처를 많이 받아서 정신과적인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토로 했다.

 휴학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아버지가 늘 자주 가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간단하게 동성애적인 성향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동성애는 장애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치료를 해 줄 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심리검사 결과 불안으로 긴장도가 한계점을 넘었다는 진단으로 불안증약물과 우울증 약물을 처방해 주어서 3주일 정도 약물을 복용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리고 잠을 잘 자게 되어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6개월 휴학 이후에 복학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성애의 역사: S군은 유치원 때와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자 어린이들과 성기 놀이 장난을 하거나 혹은 여성들에 호기심으로 그리고 유치원 시절에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좋아한다는 쪽지를 보낸 기억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시절에는 여자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고 정상적인 이성과의 관계였다고 토로 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시절부터 동성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을 했고 6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의 화장품에서 루즈를 꺼내서 몰래 입술에 바르고 화장을 한 것을 어머니가 알고 누나들과 아버지가 참석한 자리에서 어머니가 S군에게 "사내 자식이 여자 화장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느냐?"라고 호통을 치는 통에 미안해서 얼굴으 숙이고 모욕을 당했다고 털어 놓았다.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남자 나체의 동영상을 보는 것을 누나가 보았는데 누나가 자신이 동성애 기질을 눈치를 챘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동성애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자위행위를 본격적으로 하게되었다고 했다. 남녀 공학인 중학교 시절에 하루는 일찍 1시간 정도 빨리 학교에 가서 일찍 온 한 남학생과 S군이 적극적으로 끌어 안고 성기를 만지는 장난을 했고 그 남자 학생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했다. 그리고 중 2학년 때는 혼자 교실에서 쓰레기 통에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자위 행위를 한 것을 고백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동료들이 S군을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 S군을 보고 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털언 놓았다.

 고교 1학년 때 S군이 수영복을 입는 섹스 걸들의 잡지를 보고 있는 것을 한 동료가 보가 그 친구가 "네가 여성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신기하다"라고 말을 해서 그 친구가 S군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토로 했다.

 고교 시절에는 동성애 동영상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가 S군에게 언제 자신이 동성애자 임을 확실히 알 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이 동성애자 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첫 동성애 섹스의 경험은 군에 입대 직전에 휴대폰 동성에 앱에서 동영상으로 서로 나체를 보여주면서 자위행위을 해 오다가 30대 중반의 한 남자를 만나서 그의 방에 가서 항문 섹스를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동성애 섹스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 후에 군에 입대를 해서 군복무 시설에는 동성애 섹스는 없었으나 이성애인 한 선임이 그를 장난으로 동성애적으로 올라타고 섹스 흉내를 내거나 서로 끌어 안고 뽀뽀를 하는 등의 섹스적인 장난에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토로 했다.

 군대 내에서는 동성애 섹스가 없었지만 휴기중에 혹은 외출해서 동성애 엡으로 동성애를 가졌다고 털어 놓았다. 주로 일회용으로 동성애자와 서로 연락을 해서 그의 원룸에서 항문으로 동성애를 했는데 주로 S군이 항문을 제공했고 그가 스스로 항문 섹스를 한 것은 몇 번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로 했다.

 전역 후에 대학 2학년에 복학해서 4년 동안은 동영상으로 동성애 자위행위는 했지만 직접 동성애는 없었다고 했다. 2년 전에 졸업 후에 취업을 하고 처음으로 직장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엡애서 만난 동성애자와 동성에 섹스로 성기를 빨아주거나 항문으로 섹스 관계를 2주일 정도 4회-6회 정도를 가졌다고 고백을 했다. 1달 전까지는 그렇게 동성애를 해 왔는데 한 남자와 가장 많이 관계를 한 것이 2개월 이상 넘어간 적이 없다고 고백을 했다. 주로 한번으로 혹은 2회 3회 만남으로 섹스를 가져왔다고 털어 놓았다. 몇 명의 여성들을 소개팅으로 만나면서 형식적으로 관계를 해 오다가 3주일 전에 군대에서 자신을 좋아해서 신체 접촉을 했더 이성애 선임이 한 여성을 소개를 해 주면서 그녀와 2번 정도 데이트를 가지게 되면서 동성애가 약해지고 동성에 섹스의 강력한 에로틱함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그 여성 파트너에게 섹스 욕구와 애착을 느끼지 않는 중간 상태임을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S군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동성애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 본적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대학 시절에 교회의 청년부에서 만난 2명의 친구에게 S군이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읽어면서 한 남자가 신앙으로 동성애를 치유의 은혜를 받았다는 간증 수기를 읽고 독실한 믿음이 동성애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결심에서 그 두 명으 청년부 동료에게 자신이 동성애 성향이 있다고 편지에게 약간의 동성애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들의 이해를 구했으나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고 털오 놓았다. 그 친구 한사람은 결혼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미혼으로 그가 며칠 전에 만나서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동성애의 치료를 언급했따고 틸어 놓았다.

 치료자가 S군이 초,중, 고교 그리고 대학 시절에 친한 친구들이 몇 명정도 되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S군은 거의 없다고 털어 놓았다. 친밀한 친구가 거의 없고 고향의 친구들을 가끔 만나지만 자신이 동성애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들이 모른다고 했다. 대학 시설에 늘 혼자서 생활을 했고 2년 전에 취업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친밀한 친구가 아직도 없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3주일 전에 만나서 2번 데이트를 하고 있는 그 여성을 만나서 마음이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 욕구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S군이 취업으로 스트레스 상황이 가중 되면서 동성애가 급증 했다는 그의 말을 인용을 해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부부관계에서 S군의 섹스 욕구가 왜곡된 것과 친한 남자 친구가 없었다는 것과 동성애가 자아의 소멸에서 자아 보호를 위해서 생겨난 섹스의 왜곡임을 지적을 하면서 6개월 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서 동성애를 해결하도록 이야기를 했을 때 S군은 오래 전부터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신앙의 힘으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동성애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치료자의 치료 사례를 읽어보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주일부터 6개월 치료 계약으로 치료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