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기 시대(1935-1970)

 

 

시작 
정신분열증의 역사 
정신분열증의 특징과 종류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적 치료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치료 역사 
심리적인 관점에서 본 정신분열증의 원인 탐색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정신분열증의 원인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사례 
망상 장애(편집증) 
치료자 소개 
전문 사이트 소개 
해리 장애(빙의 현상) 
대화치료의 효과? 
심리치료 효과? 
치료자에 대한 평가? 

 

 

                    비엔나(Vienna)에 있는 프로이트의 생가에 보존되어있는 프로이트가 환자를 치료하던 침대 모양의 카우치(couch)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적 치료

 

1935-1970년까지

1930년대 중반기에 들어서면 중대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하리 스탁 셀리번(Harry Stack Sellivan)이 중심이 되어 목자와 에녹 병원(The Shephard and Enoch Pratt Hospital)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프로젝트가 도입이 되었다. 여기에서 셀리번의 대인관계 치료 기법이 시작된다. 셀리번의 제자들로써 정신분열증 치료에 유명한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과 하놀드 실(Harold Searles)이 체스트 낫 롯지 정신병원(Chestnut Lodge Sanatorium) 에서 평생동안 정신분열증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하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 정신분열증 어린이와 어른들의 치료에서 새로운 이론인 대상관계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 이론에서 세갈(Segal), 위니코트(Winnicott), 로젠필드(Rosenfeld), 비용(Bion) 등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정신분석학적인 치료 기법으로 본격적인 정신분열증 치료가 시작되고 이론적으로 정립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가들의 치료가 본격적인 쾌도에 이르게 된다.

셀리번(Sullivan)은 볼티모어에 있는 목자와 에녹 병원(The Shephard and Enoch Pratt Hospital)에서 창설한 심리치료적 치료 팀에 의해서 그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대인관계를 연구를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즉 의사들, 간호사들, 그리고 도우미들은 대인관계 쪽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를 재 적응을 도와주는데 목적을 두었다. 사실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세트에서 회복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심포지엄과 논문에서 셀리번(Sullivan)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적 원인을 강조를 했다. 전이를 형성하기 위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능력을 강조를 했다. 그의 기본적인 발달의 이론은 몇 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진다.

 대인관계에서 관계된 영역을 벗어나서 인간이 존재하는 발달의 기간은 없다. 출생 후기 단계의 어린 시절부터 그 시점부터 그 유아는 공감에 의해서 양육을 하는 사람의 인정과 불인정의 감각을 처음으로 배운다. 어떤 정도의 대인관계는 정신건강의 초반기 상황에 관계 없이 개개의 평생 동안 유지되어진다. 그러므로 정신분열증 환자에 있어서 그것의 파괴는 단지 부분적이다.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특별히 셀리번(Sullivan)의 연구에 의해서 고무 받은 분석가들 중에 한 사람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연구를 계속했다. 그녀는 독일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을 했다. 그녀는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체스트 낫 롯지(Chestnut Lodge Sanatorium) 정신병원에서 약 20년 이상을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찰을 했다. 그녀의 첫 논문(1939)에서 그녀는 이후에 정신분열증을 개발하는 환자는 삶의 초반기에 심하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강조를 했다.

유아가 그 자신의 나르시즘적 상황 안에서 과대 과장 속에서 살고 있는 어린 유아기 시기에 심하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이후에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었다고 강조를 했다. 이 상황에서 그는 그의 욕구가 그의 마술적 상상의 결과에 의해서 충족되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생각을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 경험이 나르시즘적 안전 기간을 단축 시켜버린다. 이후의 삶의 좌절 쪽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를 감각이 예민하게 만든다. 이 결과로써 그 환자는 현재의 삶의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그 유아의 자폐적인 망상의 세계 재를 재 형성하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다.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그러한 환자들이 그에게 접근을 하는 치료사 쪽으로 그의 고립된 세계와 개인의 삶에 침투를 할 목적으로 그에게 접근을 하는 환자들의 극단적인 의심과 불안을 기술을 했다. 그 환자가 그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수 개월과 수 주일의 테스트를 거친다. 그러나 이후에 그 치료사에 그의 의존은 대단히 크다. 비록 그가 그것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예민하게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 분야에서 그 환자가 실패할 때 그 결과는 심각한 실망으로 바뀌고 과거의 좌절이 반복으로 경험이 된다. 그리고 집중적인 미움과 노여움의 폭발로 연결된다.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이 측정을 했던 것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는 일상 인터뷰의 준비된 긴 기간으로써 시작을 해야 한다. 그 치료가 계속되면서 그 환자는 누울 것인지 혹은 자유연상을 할 것인지를 물어 보지 않아야 한다. 분석가는 환자로 하여금 충분히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고 그리고 안전함을 느끼도록 해서 그의 방어적 나르시즘적 고립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와 접촉을 재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치료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분석가의 기능은 해석을 제공해서 이것을 증명하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하고 있는 것은 환자가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이해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정신분열증 환자는 그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자신의 생산물의 무의식적인 의미를 더욱 잘 스스로가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석가는 그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에 적당하게 조심스럽게 제스처 혹은 행동으로써 조심스럽게 반응함으로써 이해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기본적인 룰로써 완전한 수용의 분위기를 추천을 했다.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기본적인 룰로써 완전한 수용의 분위기를 추천을 했다. 그 분석가와 긍정적 관계는 어린 시절에 전지전능한 마술적인 유아-엄마 관계를 모방하기 위해서 육성되어진다. 긍정적 관계의 이런 육성은 페드론(Federn)의 긍정적 전이와 부정적 전이 반응행동으로 가는 과정들의 회피 좌절의 회피를 촉진 시키는 추천을 회상시켰다.

그녀의 후반기 논문에서(1948, 1952, 1954)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그녀의 초반기 접근들을 수정하고 비판을 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정신분석은 특이 하게 조심과 양육으로써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접근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떤 인간적인 접촉을 수용하고 재개 하기를 반대하는 그의 깊이 뿌리 밖은 의심적인 싫어함을 그가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한 단 한가지 방법으로 생각했다. 여기에는 정신분석가도 이들에 포함되어있다.

그녀는 지금 이 접근을 정신분열증 환자 한데서 거부되어진 어린이에게 너무 많이 강조되어진 의사-환자 관계의 이런 타입으로써 비판을 했다. 그의 퇴행 이전에 성장한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 작다. 그리고 정신분열증 환자 안에서 거부되어진 어린이에게는 너무 많다라고 이 접근을 비판을 했다. 그녀가 느꼈던 것은 완화되지 않는 수용의 이 접근은 예민한 어른 정신분열증 환자에 의해서 분석가의 일부에 존경의 부족 혹은 겸손으로써 경험이 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환자에 의해서 그 치료사의 일부에서 불안의 흔적으로써 해석되어질 수 있다.

그녀는 지금 의사-환자 관계의 탐색은 그리고 그것의 왜곡은 치료의 과정에서 포함되어져야 한다고 추천을 해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에 강력하게 비판을 받았던 전이의 분석은 지금은 충분히 추천이 되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역시 그녀의 치료적인 노력에서 이전의 조심성을 비판을 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표현을 했다. 환자가 한 개의 능동적 치료 개입 혹은 또 다른 능동적 치료적 개입을 받아들일 때까지 너무 많이 조심스럽게 기다림으로써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의견을 표현을 했다(1948).

그녀는 역시 추천을 하기를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세 증후군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생산물들의 상세한 탐색을 더 많이 추천을 했다. 그리고 고로 셀리번(Sullivan)의 지시를 따랐다. 그에 의하면 정신분열증의 설명서를 포함해서 조증이라는 질병의 심리 역동학은 참을 수 없는 불안의 결과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불안을 차단하려는 시도로써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1948).

1954년에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그 환자 자신의 성격에 정신분열증적인 적대 감정의 파괴적 효과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폐증의 상황과 부분적인 퇴행에다 연결시켰다. 이것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불안의 치료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식의 재 공식화로 연결되었다.

정신분열증 환자 한데서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의존과 적대 감정 사이에 보편적인 인간의 갈등의 결과로써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불안의 치료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 공식화로 연결되었다(1954). 그녀는 유아 혹은 어린이들이 (그 나쁜 나로(The bad me) 셀리번(Sullivan)이 그것을 불렀다) 그리고 이후에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어린 시절에 그가 엄마를 경험을 할 때 나쁜 엄마의 어린 시절의 파괴적 영향력에 반응으로써 노여움 혹은 폭력을 논의를 하였다.

이것은 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그들 자신의 상황을 위험한 적대적인 사람으로써 관계를 하고 있느냐 하는 이유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손상이 그들과 연결 되었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여지기 보다 그들 자신의 신분을 위험하게 적대적인 사람들로써 더욱 더 갈구 사이에 긴장을 논의를 했다. 가까워짐에 대한 확신의 두려움은 그들이 거리를 두고 있고 그들이 의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반대를 해서 그들의 비밀적인 적대 감정에 대한 불안과 묶여 있다. 그녀는 강조를 했던 것은 이것이 전이에서 뚫고 나가져야 한다.

그녀의 논문 정신분열증의 심리치료에서 프롬-레이크만( Fromm-Reichmann)이 그 성격의 비 정신증적인 면의 중요성을 강조를 했다. 논쟁을 하기를 우리는 이것이 한층 더 혼란한 환자들 한데서 나타날 때 어른의 부분의 거친 부분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의 성격들의 퇴행적인 부분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어른스러운 부분은 그의 치료적인 노력에서 그 정신분석가에게 가담하기 위해서 훈련되어진다.

그녀의 후반기 연구에서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최소한의 해석 이상을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치료적인 작업은 크게는 그 환자를 심리역동적인 이해를 하도록 지시하고 안내하는데 의존했다. 그리고 그의 질병에 깨달음에 크게 의존했다. 흥미 있는 것은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은 정신분열증의 치료에서 그 퇴행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일종의 이상적인 엄마가 됨으로써 관심을 집중한 그녀의 오류를 수정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후반기 연구에서 그녀는 전이 상황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정신증적 생산물들과 갈등들을 시험하는데 접근이 되었다. 이 전이 해결이 영국에 있는 분석가들에게 가깝게 가는 많은 방법들을 그녀의 연구가 가져왔다(세갈(Segal), 비용(Bion), 로젠필드(Rosenfeld).

(Searles)셀리번(Sellvian)의 워싱턴 분석가 그룹의 또 다른 멤버 중에 한 사람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대단히 상세한 공헌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13년 이상을 체스트 낫 롯지 정신병원(Chestnut Lodge Sanatorium)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논문 중에 일부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치료에서 의존의 과정과 같은 논문은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과 밀접한 협력으로 쓰여진 것이었다.

그는 강조를 하기를 어려움들은 투사들을 통해서 전이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강조를 했다. 그 분석가는 그 환자 자신의 좌절과 노여움 때문에 적대적이고 거부하는 것으로 지각이 된다. 그는 의존에 반대하는 저항을 기술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지전능함의 상상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환자는 그의 의존 욕구를 그 분석가에게 투사를 함으로써 그의 의존 욕구에 반대해서 그 자신을 방어를 한다. 이것의 결과로써 그는 그에 대한 그 치료사의 요구들 보챔 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는 경쟁적이 되고 경멸적이 된다.

이후의 논문에서(1963) (Searles)은 전이 문제를 한층 더 상세하게 기술을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전이는 대단히 원시적인 ego 조직의 표현이다. 부분 대상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 유아에 동요를 안아주는 것에 비교될 수 있음으로 믿고 있었다(1963). 그는 치료사가 실행을 해야 할 3가지 과업들을 기술을 했다.

첫 번째 치료사는 그 환자의 부분으로써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는 관계의 수준으로부터 그 환자의 개인화를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수준을 크레인(Klein)의 분석가들에 의해서 그 환자의 일부에 투사 동일시에 의해서 좌우되어지는 전이 단계로써 기술되어지고 있다.

그 치료사의 세 번째 과업은 그 환자의 지금 구분화 되어진 그리고 통합되어진 전체 대상과 관계를 해서 해석들을 만들고 구분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점차적으로 그 환자의 전이 정신증을 전이 신경증으로 형태를 변화시킨다.

(Searles)은 그가 구두 전이 해석들을 암시-지시를 하지 않는 곳에서 치료적인 너와 나의 하나됨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설명을 하기를 만성 정신분열증에 깊이 빠져 있는 환자는 구두 커뮤니케이션을 들으려고 혹은 고용하려고 하지 않고 고용할 수가 없다. 이 단계에서는 그 환자는 그 분석가를 그 자신의 ego로 사용을 한다. 그리고 해석들을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ego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그 분석가에게 다양한 부분-대상 전이 역할들을 투사를 한다. 그 치료사는 참을 수 있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원시적 대상관계를 참을 수 있는 그 치료사를 동일시함을 통해서 그 환자는 마침내 ego의 힘을 개발한다.

이런 너와 나의 하나됨의 단계에서 전이를 시험함으로써 실(Searles)은 어떤 점에서 그 환자가 그 자신의 일부를 그 대상으로써 한층 더 정확하게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Searles)ego의 쪼갬 혹은 자아의 쪼갬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논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현은 어떤 점에서는 자아의 일부를 대상에 투사하고 자아의 일부를 쪼개는 것과 같은 것 혹은 나르시즘 전이로써 다른 분석가에 의해서 기술되어졌던 과정들을 그가 관찰했다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역시 전이의 어려움들로 연결되는 그 정신분열증 환자의 사고 과정의 콘크리트 함을 연구를 했다. 예를 들어서 그 치료사는 그 환자에 의해서 엄마처럼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빠처럼 경험되는 것이 아니고 콘크리트 하게 엄마, 아빠로 경험된다.

(Searles)은 정신분열증 전이를 존경할 만한 정도로 상세하게 시험을 했다. 그리고 전이에서 투사와 투사 동일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는 심각하게 그의 믿음에 다음과 같은 실수를 했다. 그 분석가는 상호 의존의 상황으로써 상징적 전이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의 믿음에 심각하게 실수를 했다. 그 속에서 환자가 그에게 의존을 하는 것처럼 그 분석가 역시 그 환자에게 의존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종종 그의 사랑과 미움의 느낌을 그 환자에게 자유롭게 표현을 한다.

내가 느끼기에는 실(Searles)은 그의 반 전이 느낌들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 자신을 훈련 시켰다. (Searles)은 때때로 그들에 의해서 실행되어진다.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구분들을 제거하는 그 분석가와 상호적 관계를 위한 그 환자의 투사되어진 욕구들을 인정하거나 혹은 충분히 얻지 못한다. 정신증 환자들 한데서 이러한 가장 중요한 갈등을 분석하는 것 대신에 그 다음에 우월하다고 느껴지는 어른에 의존하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분석하는 것 대신에 실(Searles)의 행동을 그 환자와 함께 acting in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여움과 그 유아-엄마 관계를 거꾸로 하려는 시도들 혹은 그 분석가를 상호 의존의 위치로 유혹을 하려는 시도 혹은 그의 합법적 역할로부터 그를 밀어 내려는 시도 정신증 환자들 한데서 가장 중요한 갈등들을 분석하는 것 대신에 실(Searles)의 행동은 그 환자와 함께 acting in 하는 것으로 본다. acting in ego의 강화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정신증 환자의 존재하는 연약한 ego를 장기화 시키는 것으로 간다. 그것은 물론 정신증의 치료에 모든 공헌들을 논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osenfeld, 1987).

아르에티(Arieti) 밑에서 공부를 한 마이켈 스톤(Michael Stone, 1954)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공헌을 하면서 강조를 했던 것은 히스테릭 환자의 전이 사랑은 나르시즘 전이의 원시적 현상과는 다르다고 강조를 했다. 정신증 전이는 그의 성격을 압도하거나 혹은 침투하기 쉽다. 그의 정신증이 그의 ego를 압도하기 위해서 위협을 하는 것과 같다.

스톤(Stone)은 알고 있기를 때때로 그들의 느낌들의 원시적인 집중도의 순수한 두려움이 어떤 환자들을 애착 회피로 남아 있게 강압을 한다. 그러나 전이가 뚫고 나가면 만족되어지지 못한 욕구들이 나타난다. 그 분석가를 폭군화 하거나 그리고 그 분석가를 컨트롤하려는 욕구가 나타난다. 혹은 실패를 하면 그에게 완전이 복종해버린다. 때때로 전이는 글자 그래도 그 치료사가 자아와 융합되어질 때 혹은 모든 점에서 자아와 같아 질 때 나르시즘적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강조를 하기를 원시적인 파괴성과 그 분석가를 전지전능하게 신처럼 경험할 필요성을 둘 다 강조를 한다. 그리고 그는 제시를 하기를 그 환자의 상상 속에 그 분석가의 전지전능함, 원시적인 파괴적인 공격에 대한 죄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전이 정신증의 정당화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분석가의 태도를 논의하면서 그는 제시를 했던 것은 결정적인 요소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참을 능력이 있다. 그리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전이와 잠재적인 반-전이 상황의  강력하고 고문적이고 고문을 당하는 전이의 고통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참기 위한 능력이다. 스톤(Stone)은 긍정적 전이를 육성하는데 그 정신분석가의 태도에서 단지 최소한의 변화를 조언했다. 고로 그 환자는 그것이 나타났을 때 적대적인 전이의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그는 분석적 치료가 기본적으로 정신증적 환자들 한데서 해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거기에는 잠재적인 정신증이 밝혀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음을 믿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페드론(Federn)의 견해와는 대조가 된다. 불행히도 스톤(Stone)의 견해들은 치료적 자료에 의해서 세분화되지 않았다(Rosenfeld, 1987).

에디스 제이곱슨(Edith Jacobson)은 주로 조울증 환자의 치료에 공헌을 했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도 흥미 있는 공헌을 했다. 그녀는 강조를 했던 것은 우울증의 분석의 과정에서 그 분석가는 불가피 하게 핵심이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우울증적인 갈등의 핵심이 된다. 분석이 진행이 되면서 그 환자는 한층 더 심각한 우울증적 상황들을 개발할 수 있다. 깊은 ego와 원초 자아(id)의 퇴행에 의해서 특징이 된다.

그녀는 제시를 하기를 우울증 환자들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의 그들의 상실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마술적 사랑을 통과함으로써 기능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의 경험에서 조울증 환자의 치료는 규칙적으로 우울증 상황에서 시작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증세가 없는 인터벌 동안에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혹은 가벼운 조증, 혹은 조증 기간에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그 우울증 환자는 즉각적으로 집중적인 레포(rapport)를 형성하거나 혹은 전혀 형성하지 못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느끼기에는 거기에는 항상 몇 달간 지속되는 초반기 가짜의 전이 성공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부정적 치료적 반응행동과 유사한 감추어진 부정적 전이의 따라오는 기간이 있다.

세 번째는 거기에는 위험한 입사적인 방어들의 상황이 있다. 그리고 나르시즘적 상황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설적인 각종 갈등 해결의 단계가 있다. 그 전이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기간이 그 환자가 그 분석가의 올오라(aura) 즉 기 속에, 영향 속에서 단지 살고 있을 때이다. 다른 대인관계로부터 철회해버릴 때이다.

전이 상상들은 양면적 새도-마소키즘적 색깔이 증가하게 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치료 작가는 특별히 강조를 하기를 그 환자의 에너지 소진적인 새도-마소키즘적 도발들을 강조한다. 그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분석가를 공갈 협박해서 그의 죄의식의 느낌들에 놀이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장기적인 반응을 얻으려고 희망을 하면서 그의 죄의식 느낌들에 놀이를 함으로써 그 분석가를 무의식적으로 공갈 협박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을 하는데 실패를 하면 그는 그 분석가로부터 힘, 엄격함, 처벌적인 분노 가혹하고 엄격한 초자아로부터 구원감정 혹은 감정 지원을 얻기 위한 개인적 목적으로 봉사하는 처벌적 노여움 혹은 힘, 엄격함의 보임을 그 분석가로부터 끄집어 내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녀가 믿고 있었던 것은 위협적인 나르시즘적 철회의 기간 안에서 그 분석가는 그 환자의 일상활동들 특별이 그의 승화들 안에서 능동적 흥미를 보여주어야 함을 믿고 있었다. 그녀는 사례 자료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역시 강조를 하는 것은 그 우울증 환자는 그 분석가의 일부에서 한층 더 이해적인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 이해적인 태도들은 과도한 그리고 특별이 그의 친절, 동정, 혹은 재 확인과 혼란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저서 정신증적 갈등과 현실(1967)에서 승화들 안에서 에디스 제이곱슨(Edith Jacobson)은 그녀의 정시분열증 환자의 치료는 주로 양면성의 종류와 관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심한 정신증적인 퇴행을 피하기 위해서 디자인 된 것이었다.

정신증은 외부 세계를 사용해서 그들의 ego 구조와 초자아의 구조들의 해체를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믿고 있었던 것은 정신증은 현실을 포기하고 새롭게 창조되어진 상상의 현실로써 그 현실을 대체 시킨다라는 프로이드의 관찰은 만약에 현실이 그 환자의 목적에 그 자제를 제공하는 것이 실패했을 때만 일어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갈등적 해석을 도와준다.

그녀가 기술을 했던 것은 만약에 정신증 환자가 ego의 나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을 투사 동일시의 과정에 의해서 적당한 의존 대상으로 투사를 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이 그 대상을 컨트롤할 수 있는 동안은 정상을 이럭저럭 유지할 수 있다.

제이곱슨(Jacobson)은 그 환자의 이들의 의미 깊은 대상들과 관계의 퇴행적 나르시즘적 본질을 알고 있었다. 이들 대상들의 심리적 이미지 상과 그들 자신의 자아의 심리적 이미지 상 사이에 영역의 연약함을 알고 있었다. 이들 환자들 중에 한 사람과 그녀의 분석 경험을 기술하면서 그녀가 말을 했던 것은 그녀는 이 환자가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그녀를 사용하기를 허용했다. 그녀는 그의 따뜻함 혹은 가까움, 혹은 거리감을 위한 그의 소망들에 그녀의 감정적 태도에 행동을 적용을 했다. 나는 그로 하여금 내 초자아와 ego를 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그의 나쁜 원초 자아로 고려하고 취급을 했다. 그리고 그의 질병으로 나를 취급하고 고려하도록 허용했다. 즉 그의 죄의식을 그의 결함들을 그리고 그의 연약함을 나에게 투사하고 혹은 나를 그가 필요로 하는 성자다움의 이상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을 허용을 했다.

그녀의 기술로부터 분명한 것은 그의 문제들을 그녀에게 투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치료 기간 동안에 외부 세계에서 의미 깊게 acting out을 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말을 했던 것은 그가 위험의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그 스스로가 알게 될 때까지 그녀는 전이에서 그의 acting out이나 혹은 외부 생활에서 acting out의 깊은 해석들을 그에게 주는 것을 피했다고 그녀가 말을 했다.

그 다음에 그녀는 그가 이전에 가져왔던 그 자료를 해석을 하기 위해서 사용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점에서 해석은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 치료는 전이 상황에서 그 환자의 초반기 나르시즘적 투사 동일시를 뚫고 나가는데 사용되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증적 붕괴의 위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영국에서 정신증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의 역사 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우리는 최초의 개척자적인 연구를 한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을 고려해 보기로 한다(Rosenfeld, 1987).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은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비엔나 대학 인문학부를 졸업을 했다. 새로운 학문으로써 등장한 정신분석에 흥미를 느껴서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프렌치(Frenczi)밑에서 십여년동안 동부를 하다가 프렌치(Frenczi)의 치료 기법이 부정적 전이를 무시하는 것에 불만족해서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은 칼 아브라함 밑에서 수년간 공부를 하다가 아브라함의 사망으로 영국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하게 되고 이후에 영국에 귀화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이 정신분열증과 어른 정신분열증을 연구하면서 어린이들의 치료에 놀이 치료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으로 프로이드 이론에서 정신분열증, 조울증의 치료를 위한 대상관계 이론을 정립한 사람이다. 그녀는 심각하게 혼란한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분석을 통해서 그녀는 발달의 최초의 유아기 수준을 탐색을 했다.

 1935년과 1946년에 그녀는 대상관계들의 이론, 방어 기재들, 그리고 두 개의 정상적 발달 단계들의 방어들과 기재들을 상세하게 기술을 했다. 그녀는 그 정상적 발달 단계의 두 가지를 우울한 유형과 편집증 자아 분열 유형으로 불렀다.

 편집증 자아분열 유형은 생후 첫 4개월-6개월을 차지 한다. 그리고 우울한 유형이 따라온다. 이들 유형의 뚫고 나감이 삶의 첫 몇 년간으로 확대 된다. 그녀는 제시를 하기를 편집증 자아 분열 유형 안에서 불안은 눈에 띄게 박해적으로 경험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방어들에 공헌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자아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쪼개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들을 대상들 안에 투사를 하고 있다. 투사 동일시를 통해서 자아의 이런 부분들이 동일시 된다. 이 과정은 나르시즘적 대상관계들의 이해를 위한 기초가 된다.

 그녀가 말을 했던 것은 만약에 편집증 자아 분열 유형 동안에 발달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지 못하면 그리고 그 유아가 내면의 혹은 외부의 이유 때문에 우울한 유형에서 기원이 된 우울한 불안들의 영향력을 대응해 나갈 수가 없다면 악순환의 사이클이 일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에 박해적 두려움과 그리고 상응하는 편집증적 기대들이 너무 강하면 ego는 그 우울한 유형을 뚫고 나갈 수가 없다. 이것이 퇴행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이 초반기 박해적인 두려움들과 자아 분열 현상을 강화 시킨다.

 고로 그 기초는 삶의 후반에 정신분열증의 다양한 형태를 위해서 형성되어지게 된다. 또 다른 결과는 우울한 특징들이 강하게 함을 받을 수도 있다. 이후에 이것이 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Rosenfeld, 1987).

위니코트(Winnicott, 1945)는 수많은 어른 정신증 환자들의 치료를 논의를 하면서 프로이드의 치료 기법에 수정이 우울증과 건강 염려증을 대응해 나가기 위해서 정신분석이 확대를 위해서 수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을 했다. 그것은 역시 그의 경험에 따라서 똑 같은 치료 기법들이 아직도 우리가 한층 더 원시적인 의논들을 취급할 수 있게 한다는 그의 경험에 의해서 그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우리가 전이 상황에서 변화를 그러한 치료 작업에서 분질적으로 고려를 한다면 말이다.

위니코트(Winnicott)는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의 초반기 연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우울증적 유형과 조증 방어에 관계 되어진 크레인(Klein)의 초반기 연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원시적인 우울한 관계 이전을 지칭하면서 그는 분명하게 지적을 했던 것은 그가 전이에서 그들이 나타날 때 해석을 했다.

1959년에 위니코트(Winnicott)는 이론적으로 그리고 치료에서 그의 견해를 상당히 바꾸었다. 그가 강조를 했던 것은 정신증 조건들은 어린 시절의 환경의 실패에 의해서 원인이 되어진 것이다. 환경 촉진의 실패는 그 개인의 성격 발달에 결함으로 결과한다.그리고 그 개인의 자아의 형성에 발달 결함으로 결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리운다.

그는 정신증을 결함의 질병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유아기 상황으로 퇴행을 믿었다. 그는 이것을 의존으로 불렀고 지금은 자아 치료를 위한 그 개인의 능력의 일부로서 보여지고 있다. 분석에서 퇴행은 그 환자로부터 그 분석가에게 어떻게 그 분석가가 해석을 해야 하느냐 보다 어떻게 그 분석가가 행동을 하느냐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이다. 그 분석가는 그의 행동을 통해서 어린 시절에 환경의 실패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위니코트(Winnicott)의 견해들은 피어스 클라크(Pierce Clark)와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의 이론과 실제 치료 둘 다에 일치된다. 전이 정신증 동안에 환자에 대한 그 분석가의 태도를 논의를 하면서 위니코크(Winncott)는 강조를 하기를 만약에 그 분석가가 그 환자가 그 스스로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그 환자에게 해석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를 했다.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 분석가가 해석을 통해서 내가 아닌 것으로 (한 개의 분리된 대상) 경험되어지면 그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게 된다.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이 위니코트(Winnicott)의 정신증 환자들에게 해석을 사용하는 것의 싫어함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은 이후에 그녀는 그녀의 정신증 환자들에게 주의 깊게 기다리는 태도들과 보호적인 태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녀의 초반기 경향을 비판을 했다. 그녀는 이것이 불필요함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그 환자의 유아기의 절망감을 너무 강조를 하기 때문에 손상을 주는 것, 손해가 됨을 발견을 했다.

크레인(Klein)의 연구를 정신분열증적인 과정에 적용을 계속을 하지 않았던 위니코트(Winnicott)와 같은 분석가들도 몇몇 있었지만 로젠필드(Rosenfeld). 세갈(Segal), 그리고 비용(Bion) 들은 특별히 크레인(Klein)의 자아 분열 기재 연구에 의해서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정신분열증 환자를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Rosenfeld, 1987).

로젠필드(Rosenfeld, 1947)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끼는 해리 현상을 가진 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한 것을 기술했다. 한 동안 그는 그 여성 환자의 나르시즘적 감정 철회와 ego 해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전이 상황에서 어떤 고통스러운 느낌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를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종종 모든 느낌들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가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그 경험들은 그녀의 자아의 일부를 쪼개서 그리고 경험을 했던 것은 그 분석가에게 투사를 했다는 것을 한 개의 과정을 추적을 해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녀는 역시 그 분석가 안으로 침투해 들어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분석가에 의해서 압도되어지고 그 분석가에 의해서 침투를 당하고 있다는 편집증적 불안들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환자의 나르시즘적 감정 철회는 이런 편집증적인 두려움을 막기 위한 부분적으로 방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침투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 때문에 밀접함, 가까이 감을 막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방어를 가지고 있었다(Rosenfeld, 1987).

세갈(Segal) 1950년에 병원에 입원한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를 고전적인 방법의 핵심 특징을 보유한 정신분석적으로 치료를 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었다. 급성 환각 상태에서 그녀는 부정적 전이와 긍정적 전이를 강조함으로써 그 환자의 방어들과 자료들을 해석을 했다. 그리고 페드론(Federn0과 대조적으로 그녀는 모든 중요한 저항을 분석을 했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자료를 거대한 불안의 수준에서 해석을 했다.

그녀는 강조를 하기를 그녀의 환자에서 진전은 그녀로 하여금 무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함으로써 만이 얻어질 수 있었다고 강조를 했다.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종종 그들의 ego 안에서 분명한 한 신경증 안에서 억압되어졌던 생각들과 상상들에 참을 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상상과 현실 사이에 그 연결들을 억압을 했다. 그리고 이 연결들이 해석되어져야 했다.

그녀는 역시 억압은 종종 한 우울한 본질의 이후에 유아기 자료를 지칭했다고 설명을 했다. 동시에 의식적으로 대단히 원시적인 구식의 자료가 그 분석에서 생산이 되어지고 있었다. 그 분석의 초반기에 그 전이를 기술을 하면서 그녀는 그 환자가 박해적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는 변하지 않는 좋은 인물이 필요했다. 그는 그 정신분석가 한데서 발견을 했던 것을 믿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는 그의 모든 방어들을 사용해야 했다. 만약에 내가 그를 좌절시키면 그는 그 좌절을 부인하고 나를 좋은 인물과 나쁜 인물로 쪼개버렸다. 그 나쁜 인물이 적대적인 목소리로써 입사되어졌다. 혹은 그 병원의 의사 한데로 재 투사되어졌다(1960). 그 치료 초반기에 그 환자는 현실로부터 애착 회피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치료의 본질을 붙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 확신을 요구했다.

세갈(Segal)의 분석은 그 환자의 협력이 없이도 그 분석가의 그 태도를 확보하는, 다시 얻는 것이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나는 먼저 그가 원하는 다양한 욕구 만족 대신에 내 해석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해석에서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이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다. 왜 그가 특별한 순간에 그것을 원하는지를 내가 이해하고 있음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다. 나는 역시 이런 종류의 해석을 따라서 내 거부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의 해석을 가지고서 이런 종류의 해석을 따라갔다(1950).

그녀는 점차로 재 확신을 위한 그 환자의 계속된 욕구는 그의 박해자들에 반대를 해서 그 분석가를 동맹군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 박해자들은 특별히 그 병원의 의사들과 관계되어있었다. 그녀는 그 병원의 의사들 한데서 쪼개진 것을 어떻게 그녀가 그 부정적 박해적 전이를 전이 상황으로 가져 오게 되었는가를 설명을 했다.

그녀는 모순을 논의를 했다. 그 분석가가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심하게 병이든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재확인을 해야 했는가? 그리고 언제 재 확신의 갈구를 하는가?를 그 환자에게 재 확신을 시켜야 했다. 확신을 위한 갈구를 할 때 내가 인용을 했던 많은 분석가들이 그렇게 했다. 예를 들어서 프롬-레이크만( Fromm-Reichmann), (Searles), 페드론(Federn), 피어스 클락(Pierce Clark) 그리고 위니코트(Wionnicott) 들이 그들이다. (Searles)은 확신을 하기를 동정과 재 확신을 줌으로써 그 분석가는 처음으로 좋은 착한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단지 좋은 대상들과 나쁜 대상들 사이에서 쪼갬이 더욱 더 커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환자의 병적인 방어들을 강화 시킨다. 그는 이후에 그 부정적 전이는 관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논문에서 세갈(Segal)은 그들의 콘크리트 한 사고 장애 때문에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분석에 어떤 기술적인 어려움들을 지적을 했다. 한 개의 과정에서 그녀는 그 환자의 상징의 사용들의 어려움을 추적을 했다. 이 결과로써 그 환자는 종종 그 분석가의 일부에서 콘크리트 한 위협과 행동들을 경험이 되어졌을 때 해석들을 오해를 했다(Rosenfeld, 1987).

1952년에 로젠필드(Rosenfeld)는 병원에 입원한 환각을 가지고 있는 한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를 분석을 기술했다.그는 특별히 그 정신분열증 환자의 대상관계를 강조했다. 그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접근을 할 때 혹은 마음의 대상에 접근을 할 때마다 그는 그 대상과 혼란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관찰을 했던 것은 그 정신분열증 환자가 자아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들을 가지고 그 분석가에게 침투를 하기 위해서 충동을 가지는 것을 그가 관찰을 했다. 이 대상관계에 반대해서 방어들을 가지는 것을 발견을 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전이 관계의 특징이었다. 그는 역시 구두어 해석의 역할을 논의를 했다.

그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분석가의 직관적 이해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동안에 그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 분석가가 그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인정했는가를 의식적으로 공식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환자에게 그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한 개의 폼으로써 그 환자에게 그것을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모든 정신분석가들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히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에 중요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의식적인 기능을 할 그들의 능력을 크게 상실했다. 고로 이런 도움이 없이 그들은 의식적으로 때때로 생생한 그들의 무의식적인 경험을 의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Rosenfeld, 1987).

로젠필드(Rosenfeld)는 강조를 했던 것은 급성 정신분열증적 상황에서 그 환자는 그의 자아를 완전히 대상들 속에 집어 넣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분석 치료 도중에 그 분석가에게). 그 대상 밖에는 남이 있는 자아가 없다. 이것은 대부분의 ego기능을 간섭을 한다. 말하는 것을 혼합해서 그리고 이해를 하는 말들이 포함된다. 이것이 외부적 대상과 관계를 할 능력을 억제를 한다.

그 환자는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혼란해지고 부정적이 되고 이 과정에서 관계된 심한 불안의 결과로써 감정을 철회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일반적인 대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로젠필드(Rosenfeld)는 강조를 했던 것은 만약에 우리가 그 환자에 접근을 하기 위해서 해석을 허용한다면 그리고 만약에 우리의 해석이 그의 불안들에 접촉을 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반응들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기에는 그가 행동을 하는데 변화가 있거나 혹은 말을 하는 것에 변화가 있게 된다(1952).

이 논문에서 로젠필드(Rosenfeld)는 페드론(Federn)에 의해서 초반기에 개발되어진 전이 정신증(transference psychosis)의 개념을 개발을 했다. 그러나 페드론(Federn)은 전이 정신증은 피해져야 했다는데 공감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석되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로젠필드(Rosenfeld)는 정신증적 전이의 인정을 해야 하는 중요성을 확정했다. 그리고 해석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확정 지었다(Rosenfeld, 1987).

비용(Bion) 1960년부터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와 정신병리에 공헌을 했다. 그는 강조를 했던 것은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 하는데 고용되어진 정신분석적인 과정으로부터 출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전이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둘 다를 취하는데 조심을 했다(1954).

그는 그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증거로 찾았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반 전이 반응행동의 증거를 찾았다.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생각하는 것에 혼란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언어를 둘 다를 탐색을 했다.

예를 들어서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3개의 방법으로 언어를 사용한다고 강조를 했다. 즉 행동의 한 유형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으로 그리고 사고의 한 유형으로써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강조를 했다(1954). 그는 명료화를 했던 것은 단어들의 사용과 생각의 사용은 구두어적 사용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것은 종종 심한 쪼갬과 투사의 과정을 통해서 정신분열증 한데서 종종 상실되어버린다. 고로 환자들은 단지 그것을 위한 배아기의 능력만 가지고 있게 남겨지게 된다.

정신분석 전이에서 구두어 사고를 위한 이 능력이 종종 그 분석가에게 투사되어진다. 이것이 그 분석가의 박해적 두려움으로 즉 그 분석가가 그것을 빼앗아가 버린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가 발달의 초반기 단계에서 그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두려움을 그 환자에게 연결된다. 이것이 그것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되찾기 위해서 퇴행의 욕구를 증가 시킨다. 구두어 사고의 능력의 부족은 그 환자에 의해서 정신 이상과 똑 같은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비용(Bion)은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교환을 기술하면서 그의 정신분석의 접근의 생생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그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한 언어와 사고의 혼란을 다루는데 그 분석가의 구두어 해석의 중요성을 설명해주었다.

1956년에 비용(Bion)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전이의 이해에 커다란 세부적 공헌을 했다. 한 정신분열증 환자 한데서 파괴적 충동들의 우세를 강조했다. 이 파괴적 충동들의 우세가 너무 커서 사랑을 하려는 충동들 그 자체가 그들에 의해서 가득 채워지게 되고 그리고 새디즘으로 바뀌어버리게 된다. 프로이드가 지적을 했던 것처럼 거기에는 현실의 미워함이 있다고 그는 강조를 했다.

그러나 비용(Bion)은 이것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현실의 미움의 중요성에 더 붙였다. 이들 두 개의 기본적인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되어져서 거기에는 임박한 소멸의 죽음이 중단이 없다. 그 분석가와 전이를 논의를 하면서 그 환자가 삶의 본능 혹은 죽음의 본능의 압력하게 그것을 넓힘에서 현재 두 개의 흐름의 현상이 분명해지게 된다. 첫 번째 투사 동일시는 대상으로써 분석가와 함께 로젠필드(Rosenfeld)가 기술한 것처럼 결과적으로 고통스런 혼란한 상황들로서 과도하게 활동을 하게 된다.

두 번째는 그것이 삶의 본능 혹은 죽음의 본능으로써 우세한 충동에 의해서 마음의 활동들과 다른 활동들을 그 자체를 표현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즉각 일시적인 하위급 충동에 의해서 불구게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 불구에 의한 고통과 혼란스러운 상황을 탈출하려는 소망에 끌리어 내몰리게 되어 그 환자는 제한된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을 한다. 즉 그 전이를 특징이 없는 성격에 다시 투사되어진다.------접촉을 넓히려고 하는 시도와 접촉을 제한하려고 하는 시도가 그 분석을 통해서 내내 계속된다(1956).

1957년에 비용(Bion)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성격의 비 정신증적인 부분과 정상적인 부분 사이에 구분을 함으로써 정신분열증 치료에 공헌을 했다. 그는 특별히 강조를 하기를 그 성격의 정신증적인 부분 안에서 투사 동일시의 역할을 성격의 신경증적 부분에서 억압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ego에 그 환자의 파괴적 공격들과 억압과 입사를 위한 투사 동일시의 대체를 뚫고 나가야 한다(Bion, 1957)는 것을 강조를 했다(Rosenfeld,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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